가신 임
여인이 치를 떨며 “이런 소리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우리 엄마 죽은 게 하나도 슬프지 않아요. 얼마나 내 속을 썩였는지 엄마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려요.”라며 나를 바라본다. 부모라고 다 존경스러운 것이 아니고 자식이라고 다 자랑스러운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오죽하면 ‘엄마 죽은 게 하나도 슬픈 마음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미운 오리 새끼라 할지라도 자식에게 줄 재산은 아깝지 않은 어머니가 아니었든가, “사실 이것 받은 것도 반갑지 않아요. 하지만, 그동안 엄마 때문에 속 썩은 생각 하면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받기로 했어요.”라며 위임장을 내놓는다. “어머님께서 어떠셨는데요?”라고 물었다. “내가 무슨 갑부도 아닌데 하루가 멀다고 전화해서 동생이 사업하는 데 어려우니 돕지 않는다고 하지요. 조카 결혼하는데 축의금 얼마를 내놓으라고 하지요. 누가 아파트 산다고 하면 돈 보태라고 하지요.”라며 “그것뿐이 아니에요. 미국 오고 싶으니까 비행기 표 사서 보내라고 하는 데 일반석은 싫으니까 비즈니스석을 끊어서 보내래요.”라며 다시 한번 치를 떤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여 자식 둘을 키우며 작은 샌드위치 가게를 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게 말이 좋아 사업이지 월세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어요. 그런데 엄마는 내가 무슨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툭하면 그런 당치 않은 소리로 나를 괴롭혔어요.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리 들었어도 저는 엄마 보러 가지 않았어요.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고 아무리 미워도 장례는 참석해야 할 것 같아서 갔다 왔는데 엄마 화장하는 데도 슬프지 않고 속이 시원했어요.”라고 하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의 어머니가 갑자기 보고 싶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갔지만 이미 어머니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 내가 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왔는데 엄마는 왜 눈만 감고 있어? 엄마 나 오면 맛있는 거 해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맛있는 음식은 어디 있어? 엄마 나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사랑하는 딸이 왔는데 왜 안아주지도 않아?”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미동 없이 말씀이 없으셨다. 가끔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엄마, 오늘 비가 오네, 거기도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태양도 떠? 아버지는 만났어? 오빠와 언니도 만났어?엄마는 좋겠다. 나도 아버지도 오빠도 언니도 보고 싶은데 이담에 가면 나도 만날 수 있겠지?”라며 어머니의 얼굴을 닦아드린다. 항상 엄마와 아버지가 그리움으로 남아있는데 그녀는 사랑이신 어머니가 죽어서 너무 좋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계산이 되지 않는다. 하긴 오죽하면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저리도 깊을까마는 그래도 이 세상에 나를 있게 한 어머니가 아니었든가,
이제 긴 여정의 세상을 마치고 영원히 살아갈 저 먼 세상으로 떠난 어머니, 언젠간 우리도 그렇게 떠나갈 인생이건만, 그렇다고 떠나간 어머니를 원망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행복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게 바로 어머니이기에 원망하면서도 그 마음 깊은 곳엔 꺼져가는 듯 피워 살아있는 어머니에게 향하는 모닥불 같은 사랑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염없이 쏟아낸 어머니에 대해 원망의 말을 마쳤는지 그녀가 위임장을 가방에 넣으며 “우리 엄마는 참 별스러운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화가 나면 막무가내로 상스러운 욕을 하는데 질렸어요. 내가 큰딸로 태어난 게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동생들 뒤치다꺼리를 다 해야 하는지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데다. 내가 뭔 돈이 있다고 그렇게 동생들 도와주라고 성화를 했는지, 동생들은 엄마 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데 그 모양도 보기 싫었어요.”라고 하였다. 그녀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저분은 지금 정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속이 시원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언젠간 자신도 어머니와 정겨웠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어머니를 그리워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영원히 가버린 어머니, 미워하고 원망한다고 그 마음이 얼마나 편할까마는 그래도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먼 세상으로 가신 임을 가슴으로 따뜻하게 받아줄 날이 올 것이다.
예진회 대표 박춘선
예진회 봉사센터 웹ykcs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