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요즘 시민권 신청하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예요?”라고 묻는 여인에게 “$725입니다.”라고 했더니 “뭐가 그렇게 비싸요?”라고 한다. “글쎄요. 저도 모르지요. 그건 이민국에서 하는 일이라서요.”라고 하자 “그럼 서류 작성하는데 얼마에요?”라고 물어 대답해 주었더니 “그게 그렇게 비싸면 서민들이 어떻게 살아요?”라며 무엇을 따지듯이 묻는 말에 할 말을 잃는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을, “좀 깎아줄 수 없나요?” “네? 깎아달라니 뭘요?”라고 하자 “신청서 하는 게 반 만 받으면 안 될까요?”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모르겠지만,저희도 센터 운영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도 돈 안 받고 해 주고 싶지만,그럴 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라고 하자 “아니, 봉사센터에서 그런 돈을 받는 것은 봉사가 아니잖아요?”라고 한다. “댁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정 비싸다고 생각하시면 다른데 알아보세요.”라고 했을 때 그녀의 언성이 높이며 “누가 추천해 줘서 전화했는데 별로 친절하지 않네요. 알았어요.”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는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깎아달라고 할 곳은 우가 아니라 이민국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살기 좋은 세상은 분명 아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모두가 만족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며칠 후, “시민권 준비하려면 무엇을 준비하면 될까요?”라는 여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에게 준비물을 말해주고 났을 때 “저 기억하시지요? 얼마 전에 전화한 사람이에요.”라고 하기에 “글쎄요. 전화한 사람을 다 기억할 수 없어서요.”라고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벌써 제 목소리를 잊어버렸어요? 제가 신청비 깎아달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비싸도 어쩌겠어요.소개한 사람이 그래도 시민권 신청하는데 제일 잘한다고 하도 칭찬해서 제가 그곳에서 하기로 정했어요.”라고 말하는데 별로 달갑지 않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약속 잡은 날을 메모지에 적으며 ‘너무 어려우면 깎아주어도 될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온 날,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내가 너무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무리 보아도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고가의 자동차SUV, 몸 구석구석 치렁치렁 달린 귀한 보석들, 나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정말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한 비싼 핸드백, 그녀의 몸에선 “나는 금수저 바로 돈 좀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요즘 하는 일도 안되고 살기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보석 하나만 팔아도 사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남편은 한국에서 사업하느라 바쁘고 아들과 딸은 대학생이었고 늦둥이 아들이 고등학생이라고 하였다. “이번에 아이들 차 사주느라고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돈이 없어요.”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하는 그녀의 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신청서를 다 썼을 때 그녀가 “좀 깎아주면 안 되나요?”라고 하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저에게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이미 알고 오신 것 아닌가요?”라고 하자 “봉사하시는 분이 너무 냉정하세요. 반 만 받아도 될 것 같은데.”라며 말을 흐린다. “그 돈이 아까우시면 다음에 다른 데 가서 하세요.”라며 복사한 신청서를 뒤로 밀자 “아니 그렇다는 것이에요. 제가 지금 너무 힘들어서 한 말이에요.”라며 지갑을 꺼냈는데 정말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 그녀의 지갑에는 백 달러짜리 돈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물론 이유가 있어 그런 돈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그녀가 놀라는 표정으로 “아니 이건 지금 아이들에게 보낼 돈을 은행에서 찾아오는 거예요.”라며 변명하는데 그야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돈은 은행에서 바로 송금하는 것이지 현금으로 송금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그래도 좋은 일 하시는 데 받으세요.”라며 백 달러짜리 지전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네, 감사합니다.”라며 돈을 받긴 받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백 달러짜리 한 장이 내 맘을 껄끄럽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왕 줄 것 좋은 맘으로 주고받았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적선하는 것처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껄끄러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속이 좁아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네. 반성 좀 하자. 응? 반성’이라며 내 마음을 다독이며 반성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행동과 말이 그래도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아름다운 만남이 아닌 어정쩡한 기분이 되어,그래 이런 사람도 만나야 하고 저런 사람도 만나야 해, 그래야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반전이 있을 수 있을 거야. 그게 세상 사는 맛이 아니겠어?
예진회 봉사센터 웹ykcs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