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에 날려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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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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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칼바람에 날려 보내자

관리자 0 5253

추운 겨울 동안 꽁꽁 얼었던 모든 생물이 해동하려는 듯 힘겹게 몸부림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잘 견디어 낼 수 있을지 고민이라도 하려는 듯, 따뜻한 햇볕, 매서운 칼바람, 옷깃을 파고드는 차가운 기온을 이겨내야만 결국 따뜻하고 싱그러운 봄바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새싹이 트기에는 이르겠지만, 그래도 지저귀는 새들의 우렁찬 노랫소리가 싱그럽다. 바라건대 어려운 삶을 지탱하고 있는 또 병으로 암으로 고통 중에 있는 우리 한인들의 가정과 마음에도 싱그러운 새들의 노랫소리처럼 아름다운 봄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삶의 고통은 잠시 지나가는 고통이라 할 지라고 찾아온 병을 이겨낼 수 있는 고통은 그 어느 것보다 힘든 아픔이리라, 살아가기 위해 삶을 지탱하기 위해 일을 해 보지만, 몸에 찾아든 병마와 싸워야 하는 사람의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든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네요.”라고 말하는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하지만, 만일 내가 너라면 나는 어떻게 힘든 병마를 이겨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아직 큰 병 없이 이렇게 활보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큰 축복이다.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든 사람, 몸이 아파 괴로움 속에 고통받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들의 힘없는 말소리가 공연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은퇴 연금 받는 게 변변치 않다 보니 사는 게 힘드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좀 덜 쓰고 절약하면 살 수도 있겠지만, 아무런 혜택 없이 사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힘들어도 괴로워도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일거리가 있어도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 사람, 그래도 살아가야 하므로 그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살아있는 목숨이니 어떻게 하든 살아가야 하는데 이것저것 모든 게 힘드네요.”라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지만, 그래도 그의 미소 속에 숨긴 말할 수 없는 그들만의 고통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직 자신만이 그 고통을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왜 여기는 매일 힘든 사람만 찾아오나요?”라는 어떤 분의 말을 들으며 “사는 데 고통 있는 사람은 여기를 찾아올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그래도 이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은 줄 몰랐어요.”라고 하였다. 내 속도 모르는 데 남의 속까지 어찌 알까, 그래도 자신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어서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럴까?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인 안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누구도 그들의 그 어려움에 함께할 이웃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형이 좀 잘 살아요. 그래서 좀 도와 달라고 했더니 ‘알았다.’라는 했는데 그다음엔 아무 소식이 없어요. 그리고 지금은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아요.”라고 하였다. 아무도 없었다. 이 세상에 내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의 인생은 내가 살아가야 할 뿐, 그 누구도 아프고 힘들고 어려운 나에게 친구가 되고 동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옛날에 조카들 데려다 공부 뒷바라지 다 해 줬는데 지금은 아예 연락도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어느 사람은 “다 소용없어요.”라며 “그래도 이제 봄이 오니 희망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오네요.”라고 하였다. 그래! 그렇게 희망을 품으려무나. 누가 있어 너에게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누가 너의 아픔을 대신할 수 있을까! 너의 것은 오직 너의 것일 뿐, 그 누구도 너의 것이 나의 것이 될 수 없고 남의 것이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을, 후회하지 마라, 원망도 하지 마라, 그리고 탓하지 마라. 네가 걸어온 길, 네가 만들어 온 네 인생길, 모두 다 네가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니? 결국 알고 보면 떠나간 그들이 원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기막힌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어떤 때는 화가 나요. 내가 자기네들 어떻게 해 주었는데 그 공도 모르는 것들, 생각하면 기가 막혀요.”라고 한다. 무언가를 해 주었을 때 무엇을 되돌려 받으려고 하지 말자. 그것은 내가 쌓은 천국의 계단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해 준 것은 많은데 내가 돌려받은 것이 너무 초라할 때 사람들은 괘씸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런 원망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다 주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언젠간 큰 것으로 되돌려 받을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 받는 그 상처가 크기만 할 뿐이다. 원망은 칼바람 속으로 날려 보내고 우리 따뜻한 봄기운을 받아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슬러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 ykcs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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