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

untitled
untitled
untitled
untitled
untitled
untitled
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홈 > 커뮤니티 > 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졸혼

관리자 0 5052

요즘 50대 이후의 중년 또는 노부부가 황혼 이혼의 대안으로 졸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혼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다. 떨어져 살지만, 남편 있는 여자. 아내 있는 남자가 되어 서로의 삶에 부담되지 않게 떨어져 사는 졸혼이라는 선택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이혼을 선택하고 싶지만, “혼자 살면 요리하고 빨래하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 이혼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라고 말하는 노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잔소리가 너무 많아 귀가 먹을 지경이다.”라고 말하며 “그래도 ‘참고 살다 보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온종일 들어야 하는 마누라의 목소리가 소름 끼친다.”라고 하였다. “왜 잔소리를 하는데요?”라고 묻자 “몰라요. 모든 게 다 불만투성이에요. 이젠 대꾸하기도 귀찮아요.”라고 하는데 어떤 이유로 노인은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할까? 또 그의 아내는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을까? “요즘 ‘졸혼’이라는 것도 있는데 잠시 떨어져 사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하자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에요. 방도 구해야 하고 살림살이도 장만하려면 그것도 일이 많잖아요.”라며 “나는 별로 불편할 것도 없고 귀찮을 것도 없는데 마누라는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어요.”라고 하였다. 노인의 말을 들으며 지나온 나의 과거를 생각하였다. 매일 보는 남편, 밥 차려 주어야 하고 빨래해서 다림질해야 하는 일이 너무 지겨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 출장 가”라는 말을 들으면 어찌나 반가웠던지. 남편이 출장 가고 난 그 며칠이 나에겐 꿈같은 날이었다. 남편이 진급한 후 속으로 ‘이젠 출장 더 많이 가겠지?”라고 생각하며 남편 출장 갈 날을 더 많이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출장을 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요즘은 출장 갈 일이 없나 봐?”라고 묻자 “내가 왜 출장을 가? 부하들 보내지”라며 “그 지긋지긋한 출장 가지 않아서 정말 좋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결혼은 했지만 가끔은 잠시라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이 군대 제대했을 때 “이젠 지겨운 군복 다림질하지 않아 정말 좋겠다.”라고 했지만, 그때부터 매일같이 갈아입는 셔츠 다림질하느라 내 손길은 더욱더 바빴다. 부부는 동고동락하며 사는 것이라지만, 그래도 가끔은 사색까지 즐겨야 할 필요는 없어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지겹고 아무리 예쁜 꽃이라 해도 매일 보면 지겹듯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라고 하자 “그래도 지금 거의 40여 년을 같이 살았는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였다. 뭐 어떻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는 말일 뿐인데 노인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본다. 헤어지자니 부부여서 안 되고 같이 살자니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니 과연 노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자니 갈 곳이 없고 머물자니 가시방석이다. 하긴 ‘졸혼’도 돈이 있어야 하고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가 준비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아내와 무슨 취미 생활을 하면 어떨까요?”라고 하자 “그것도 해 보자고 했어요. 등산 가자고 하니까 다리 아픈데 그걸 왜 하느냐고 하고, 여행 가자고 하니까 돈도 없는데 왜 그런 데다 돈 쓰느냐고 하니 말하는 것도 힘들어요.”라고 한다. 누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헤어질 수 없다면 서로 마음을 나누며 다독거리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가족을 위해 평생 일하며 수고한 남편, 이젠 늙어버린 남편에게 아내는 무슨 이유로 그토록 모질게 하는 것일까? 물론 아내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노인의 얼굴에 깊게 밴 수심의 못이 너무 깊고 어둡다. 가자니 갈 곳이 없고 있자니 가시방석인 노인의 남은 인생이 서러워 보인다. 어두운 긴 터널 속에서 방황하는 노인, 어찌해야 좋을까?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건만, 지나온 세월은 기억도 없이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편안한 노후를 생각했거늘 이렇게 무거운 고뇌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예진회 봉사센터 웹ykcsc.net  

0 Comments
SUB MENU
State
  • 현재 접속자 108 명
  • 오늘 방문자 1,291 명
  • 어제 방문자 1,420 명
  • 최대 방문자 2,756 명
  • 전체 방문자 989,417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