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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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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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인명재천

관리자 0 3712

글쓴이 박춘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성당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 제단 앞에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관이 놓여 있고, 한쪽에선 신부님이 장례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우리 인간들은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불확실한 것은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라시는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들으면서, ‘나도 언젠가는 분명히 죽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언제 죽게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니 새삼스레 ‘죽음’이라는 단어가 두려워지기도 하고, 삶이라는 것이 왠지 허무하기만 하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의생명은 길어지고 100세 노인들을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 잘 다듬어진 저 관 속에 누워 있는 노인도80을 바라보는 연세에 수명을 다하여 하늘나라로 떠나가셨다. 사람들은 하기 좋은 말로 ‘호상’이라고 하지만, 어머니를, 형제를 떠나 보내는 가족들의 마음은 그저 슬프기 짝이 없을 것이다. 나는 돌아가신 분의 장례미사를 끝내고미용실을 찾았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인은 내가 반가워서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매상이 올라가는 것이즐거운 것인지 지나치게 부산을 떨어가며 “언니! 참 오랜만에 오셨네! 오늘도 커트만 할 거예요?”라는 그녀에게“응 그래, 아주 짧게 커트해 줘!”라고 주문하며 의자에 앉자 그녀의 손놀림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잽싼 손놀림을 거울로 바라보고 있는데, “언니, 언니 귀는 정말 작네요.”라고 말하며 무엇이 우스운지 킬킬거리며 웃었다. 평소귀가 작다는 말을 자주 들은 터라 별로 대수롭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이 새삼스러운 듯 나는 다시 한 번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러자 그녀가 “언니, 이거 알아요? 귀가 작은 사람은요 명이 짧대요.”라고 하더니 다시 킥킥거리며 내어깨를 두드린다. “언니, 미안해, 그렇다고 그게 뭐 정말 맞는 말은 아닐 테고 그저 웃으라고 한 말이겠지요, 기분나빴어요?”라며 내 표정을 살핀다. “그래, 귀가 작아 명이 짧은 나는 일찍 죽을 터이니 그대는 내 몫까지 오래오래천년만년 잘 살면 되겠네!”라고 내뱉는 내 말투가 어째 다정스럽지 못하다. 그렇지 않아도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인데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유쾌할 리 없다. 인명재천이라고 했던가, 죽고 사는 일은 하늘이나 알 일, 언젠가는 죽음을맞이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별로 기쁘게 들리지 않는다. 머리 손질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말이 생각나 자동차 백미러에 귀를 비춰보았다. 그녀의 말을 들어서인지 유난히 귀가 작아 보였다. 그렇다고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귀를 크게 만들 수도 없는데, 반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던 만두같이 생긴 귀, 집으로돌아오니 남편이 “심심한 데 드라이브나 갈까?”라며 집을 나선다. 청명한 하늘에 두둥실 떠도는 흰 구름이 마냥 상쾌하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한적한 시골 길로 접어들었을 때, 백미러에 나의 귀가 보이자 문득미용사의 ‘귀가 작은 사람은 일찍 죽는다?’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눈, 코 작은 것을 성형했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작은 귀를 성형했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는 것을 보니 귀 늘리는 방법은 없는가 보다. 나는 가만히 귀를 잡아당겨보았다. ‘만일, 계속 이렇게 귀를 잡아당기면 귀가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야’라는 생각으로 자꾸만 자꾸만 그렇게 귀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양손으로 양쪽 귀를 잡아당기는 나의 모습이 이상했던지 남편이 “지금 뭐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래서 “귀가 작은 사람은 일찍 죽는다잖아, 그래서 나는 당신과 천년만년 오래오래 살려고 지금 귀를 늘리고 있는 중”이라고 했더니 남편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러지 말고 아예 돌멩이에다 구멍을 뚫어걸고 다니면 자연히 늘어날 것”이라며 비아냥거린다. 하긴 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은 귀에다 무거운 귀고리를 달고 다녀 귀가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을 TV에서 본 기억이 있다. 나도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남편 말대로돌멩이를 달고 다닐 수도 없고, 할 일 없이 귀만 잡아당기고 있을 수도 없는 일, 게다가 한참 동안 귀를 잡아당기다보니 귀가 벌게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귀 잡아 늘이는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사람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명대로 살다 주님이 부르는 그 날이 오면 ‘주님, 제가 여기 왔습니다.’라며 주님 앞에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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