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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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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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관리자 0 2530

이제 완연한 가을인가 보다. 선선해진 가을 날씨가 옷깃을 파고든다. 지난 수개월 동안 우리가 겪어야 했던 바이러스 고통이 가을바람에 날려 멀리 떠나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도 가을을 맞이하고 보니 시원한 가을바람을 들이키는 우리 이웃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많은가 보다. 그래야지! 정말 그래야 하지 않을까? 얼마나 더 큰 고통을 겪어야 고통이 사라질 수 있으며 얼마나 더 기다려야 어려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겪을 만큼 겪었다고 하지만, 하늘이 하는 일을 미약한 인간이 어찌 알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들 행복을 맞아들일 그 날을 기다려야 한다. 겪어야 하는 일은 비록 힘들고 험난해도 우리는 이겨낼 힘을 가지고 있기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마음을 다독인다. 그녀는 자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목이 메어  잠겨있었고 목멘 소리를 죽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그녀는 자신이 의지할 곳 없다는 것이 너무 슬프고 괴로웠다. 더구나 한국어가 서툴러 말하는 데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고 한참을 더듬거리며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애타게 매달리고 있었다. 늙은 아버지는 귀가 어두워 듣는데 너무 힘들어했고 장애인 딸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애처로웠다. “사는 건 어때요?”라고 묻자 “아버지 은퇴 연금 조금 나오는 것하고 제가 받는 장애인 혜택으로 살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은퇴 연금 반이라도 받을까 하여 신청했지만, 혼인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무척 난감해하였다. 그런 계기로 우리에게 연락한 그녀에게 이것저것 안내를 해 주었는데 영사관에 가니 아버지가 ‘주민등록 번호’를 알지 못하여 결국 증명서를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가 나서야 했다. 한국어가 힘든 그녀의 기억으로 아버지가 마지막 살았던 주소지의 구청에 그들의 사연을 적어 편지를 보냈다. 본인도 아닌 다른 사람 보낸 글을 읽고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보내줄 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구청에서는 당연히 보내줄 수 없다는 답장이 왔다. 우리는 그 사연을 그녀에게 보낼 수 없어 고민하던 중, 구청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아마 구청장님이 찾아주라는 분부를 내린 것 같았다. “그분의 가족관계 증명서를 찾았습니다. 서식을 작성하여 보내주시면 저희가 곧 보내겠습니다.”라고 쓴 글을 읽는 순간의 그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영사관에 서식을 문의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만 할 뿐,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결국 구청에 연락하고 다시 답장받고 결국 서식을 찾아 작성하여 그녀에게 서명할 것만 표시해 보냈더니 그녀 눈물을 흘리며 “번역해야 하고 또 공증을 받아야 한다는 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했을 때, 번역은 우리가 해  주는데 공증이 문제네요.”라고 하였다. 공증이란 본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장애의 몸으로 3시간이 넘는 곳을 온다는 것은 큰 무리였다. “괜찮아요. 내가 갈게요. 그리고 한국 음식이 필요할 텐데 적어두었다가 미리 말하세요. 준비해 갈게요.”라는 말을 했을 때 그녀의 울음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울지 말아요. 그래도 이렇게 잘 해결되어 가고 있잖아요. 걱정하지 말고 눈물 뚝~이라고 하자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돈은 얼마를 준비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돈? 돈이라!  “돈은 이담에 복권 당첨되면 그때 두 배로 주고 지금은 그런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말로 위로한다. 장애인 혜택금과 아버지의 은퇴 연금으로 집값 내기도 어려운 그녀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었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린다. 몸이라도 성하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마는 오십 대 중반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편한 몸으로 늙은 아버지를 홀로 모시고 사는 그 마음마저도 감사할 뿐이다. 얼마나 더 견뎌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얼마나 기다려야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사는 날이 올 것인가? 너무 먼 곳이라 가 볼 수는 없지만, 그녀의 삶이 너무 아파 내 마음이 쓰리도록 슬픈 것은 그가 남이 아닌 바로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이었고 고달픈 부녀의 삶이 너무 슬퍼 가슴이 아프게 저미는 것은 우리가 도와줄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아! 슬픔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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