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무엇을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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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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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그녀는 무엇을 보았을까?

관리자 0 3845

< 주간연예 게재 중>

                                                                                                                                                         글쓴이 박춘선   

               

일찍 아내와 사별한 그는 혼기를 놓친 장성한 딸을 앞세우고 안으로 들어온다. 등까지 내려오는 유난히 긴 검은 머리로 양쪽 얼굴 반을 가리고 조심스레 들어서는 그녀를 보는 순간 ‘전설의 고향’에나 나옴 직한 귀신같다는 생각을 했다. 

날씬한 몸매, 하얀 피부, 소녀 같은 미소를 짓는 그녀. 무슨 연유에서인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제가요 골다공증인데 돈이 없어서 병원을 못 가요”라며 삐죽이 입술을 내민다. “에이, 지금 나이가 몇인데 골다공증이야, 그런 것은 아버지나 나 같이 나이 든 사람들이 뼈에 기름기가 없어서 생기는 거야”라고 하자, “아니어요, 정말이에요. 등도 아프고 척추도 아프고 그래서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해요.”라는 그녀에게 “어디가 가장 많이 아픈데?”라고 물었다. “제가 지금 위암이에요. 왜냐하면, 제가 어렸을 때 간염을 앓았거든요, 그렇지만 돈이 없어서 병원도 못 가요”라는 그녀와 더 이상의 대화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를 쳐다보니 나이 든 아버지는 기가 막힌다는 듯 허공에 눈을 두고 있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겪은 아버지도 “지가요, 지금 지 정신으로 사는 게 아니라니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말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없는 딸은 병원도 제대로 데려가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다는 듯 아버지에게 하얗게 눈을 흘긴다. 

 

망상에 젖어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아프다며 온종일 누워있는 딸, 정말 몸이 아프다면야 병원에라도 데리고 가 보련만, 병원에서는 아무런 증상도 발견할 수 없다는 말만 하는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나는 매일 아픈데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대요,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가보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라는 딸을 바라보는 늙은 아버지의 얼굴에 아스라이 어둠이 내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너무 막막한 아버지는 “내가 이러고 살아요, 어쩌면 된대요, 예?”라며 고개를 숙인다.


“우리 따님은 하루를 뭐하며 지내요?”라고 묻자 그녀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책도 읽고 컴퓨터도 하고 그냥 그렇게 지내요.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요.”라는 딸에게 “이제 어머니도 안 계시고 아버지는 연세 들어 직장도 다닐 수 없는데 이제 딸이 아버지를 잘 모셔야 하는데, 딸이 자꾸만 이렇게 아파서 어쩌나?”라고 하자, 갑자기 그녀가 가여운 듯 아버지를 쳐다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홱! 하고 눈을 돌리더니 “제가 많이 아파요, 암도 생겼고요, 골다공증도 생겼고요”라며 온 세상의 병은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양 얼굴을 찡그리며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는 딸을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던 늙은 아버지의 눈에서 급기야 눈물 한 방울이 뚜~욱하고 떨어진다. 

 

아! 어쩌란 말인가? 대체, 무엇이 이들 부녀에게 이렇게 큰 고난을 짊어지게 만든 것일까? 가냘프디 여린 딸의 손을 잡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 보아도 뇌의 기능이 어떻게 된 사람처럼 종잡을 수 없는 말만 해대는 딸이 그저 안타까운 듯, 하얗게 세어버린 머릿속을 쓸어넘기는 아버지가 지친 듯이 긴 한숨을 내 뿜는다. 


그렇게 오랜 세월 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날을 아파하면서 지내 왔을까? 까맣게 그을려 재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돈이 없어 병원도 못 가요.’라고 종달새 모양 재잘대는 딸의 원망을 들으며 늙은 아버지는 얼마나 긴긴밤들을 울었을 것이며,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하며 얼마나 많은 날을 애태웠을 것인가? 잔병치레를 많이 했던 나 때문에 피곤함에 지쳐 잠드신 어머니를 대신해 밤새 나를 간호하시던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딸을 내려다보며 안타까이 우셨을 것이다. 

그런데, 온전치 못한 딸 때문에 수많은 세월을 슬퍼도 슬프다 말 못하고, 아파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아버지, 슬프다 한들, 아프다 한들 헛소리만 하는 우울증의 딸을 늙은 아버지가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벌겋게 충혈된 두 눈에서 반짝 비친 눈물을 소리 없이 옷소매에 묻히는 아버지, 그 노인의 그 마음이 아파 내가 아프고, 그 슬픔을 내가 안을 수 없어 내가 슬프다. “그렇다고 정신 병원에 입원시킬 수도 없고, 데리고 있자니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엔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가끔 미소진 그 입가엔 슬픔만이 가득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아버지의 얼굴에 서린 절망에 찬 안타까운 아버지의 마음 한 조각을 보았을까? 아니었다. 그저 무능한 아버지의 모습만 보았을 것이다.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는 딸을 앞세우고 문을 나서는 두 사람의 등 뒤에 뜨거운 햇살이 하얗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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