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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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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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그래도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

관리자 0 5297

글쓴이 박춘선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들리지 않아 들을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몇 번씩 고민해 본다. 

 

물론 마주 보고 있는 경우라면 얼마든지 글로 써 표현해 보겠지만, 전화로 “에구~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아요.”라며 한숨 쉬는 노인에게 나의 마음을 전해 줄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어르신, 뭐가 필요하신데요?”라고 여쭈어 보지만, “뭐라고 하는지 당최 알 길이 없네.”라고 하시는 노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먼 훗날 나도 저 노인처럼 귀가 어두워지겠지.”라는 생각을 하자 어째 늙어가는 것이 두렵다. 어디 귀만 어두워지겠는가. 눈도 침침해질 것이고,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걷지 못하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눈이 어두우면 돋보기라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보청기를 두 개씩 끼고도 듣지 못하는 노인을 볼 때마다 마음이 어둡다. 

 

친정어머니도 귀가 어두워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실 때면 큰소리로 내는 버릇이 있어 어머님만 만나면 항상 목소리를 돋웠는데 가끔 잘 들으실 때도 있으신지 그럴 때면 “얘가 누가 귀가 먹었나 왜 그리 소리를 질러?”라고 하시던 어머니를 보고 웃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함께 있을 때는 차근차근 설명해 드릴 수도 있으련만, “내가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하시는 어른께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라고 물으면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귀가 어두워 못 알아들어”라고 하시며 자꾸 물으신다. 그렇다고 큰소리를 내자니 그것도 그렇고 차근차근 이야기하자니 못 알아들으시는 노인들, “주소를 주시면 찾아가 뵐 수 있을 텐데요.”라고 하자 “뭐라고?”라고 하시는 노인과의 대화가 더는 어려워 전화를 내려놓아야 하는 이 심정을 그들은 알까? 

 

어느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는데 누군가 툭 치며 “거 예진회 누구 아니오?”라고 묻기에 “예 맞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셨어요?”라고 하자 “잉? 뭐라고?”라는 노인께서 “전에 전화로 뭐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냥 전화를 끊어서 아주 섭섭했어요.”라며 혼잣말을 하고 계신다. 기억은 없지만, 아마 많이 서운하셨던 것 같다. 누군가가 “할머니가 귀가 어두우세요.”라고 하는데 노인은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물건 싼 비닐봉지를 들고 휭~하니 나가신다. 그것도 찬바람 쌩쌩하게 휘날리며, 

 

돌아오는 길에 잠시 생각에 잠긴다. 주님께서는 다른 것은 다 몰라도 귀 하나만은 좀 더 오래 들리도록 놔두실 것이지 늙음도 서러운데 귀까지 어둡게 하셔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만드신 것일까를 생각한다. 늙으신 부모님은 과연 어떤 것을 필요로 하실까? 하긴 많을 것이다. 운전을 못 하니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보고 싶어도 참아내야 하는 것, 오직 답답한 마음을 안고 그저 자식들이 하는 대로 인내라는 이름을 내걸고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 노인의 것이라면, 참으로 쓸쓸하고 답답하고 또 슬픈 일이 아닌가 싶다. 노인이 될수록 마음이 바쁘다. 

 

당신이 가기 전에 아니 떠나기 전에 더 많이 해 주고 싶고 더 많이 안아주고 싶은 그런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직 먼 길을 갈 수 있는 젊음이 없기에 “언젠가 되겠지.”라는 기대를 할 수 없는가 보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자주 와야지 네가 좋아하는 총각김치 해주지.”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환청 되어 되살아난다. 이제 더는 들을 수 없는 어머니의 그 목소리. 이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실 것 같던 어머니가 떠난 지금, 귀가 안 들린다며 답답해하시던 노인의 말씀이 나의 어머니 같아 마음이 아픔으로 덮인다. 노인이 사는 그곳은 어디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노인은 “한 달 생활비 가지고 방세 내고 식품 조금 사면 돈이 모자라요. 전기세며 물세, 전화비 같은 것을 낼 수 있는 여유가 없어요. 좀 도와주실 수 없나요?”라는 말씀, 그러나 그 뒤의 말씀은 더 나눌 수가 없었다. 설명해 드린다 해도 들을 수 없는 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이 찾아와 “제가 티셔츠가 하나 있는데 이것을 드릴 터이니 $5만 주실 수 없나요?”라고 묻기에 “그 돈 가지고 뭘 하시려고요?”라고 묻자. “아침부터 먹지를 못했어요. 햄버거라도 사 먹으려고요.”라고 하는 그에게 라면 2개를 삶아 주었을 때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 이게 뭐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할 수 있는 것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 그것뿐이었다. 

 

한 사람이 끝나면 다른 사람, 그 사람이 끝나면 다시 또 찾아오는 다른 사람, 이것이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가끔 미소 띤 얼굴도 보고 싶다면 나만이 부리는 주제넘은 욕심일까? 아니야 아닐 것이다. 아마 욕심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할 이유는 아직도 그들은 내가 사랑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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