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한 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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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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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회가 만난 형제들

햇살 한 꾸러미

관리자 0 6249

글쓴이 박춘선

​“원장님 저 한 번만 안아주세요.” 그녀가 울먹이는 소리로 다가와 두 팔을 벌려 나에게 안긴다. 가녀린 그녀의 등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얼마나 소리 내 울고 싶었을까? 그녀의 흐느낌이 내 마음을 아프게 흔들고 있었다. 남편과 결혼하여 남매를 낳아 그런대로 다복하게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다른 여인을 만나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홀연히 다른 여인의 품으로 날아 가 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불행으로 가정은 산산이 조각나고, 어린 두 아이를 떠맡아야 하는 일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위자료는 그만두고라도 아이들 양육비라도 주었더라면 그런대로 버텨볼 수도 있으련만, 남편은 그런 것에는 아무런 책임도, 미련도 없다는 듯, 그렇게 훌훌 떠나가 버렸다. 그녀는 별안간 집세를 부담해야 했고, 어린 두 아이의 교육과 양육을 떠맡아야 하는, 자신의 벌이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벽이 사방으로 꽉 막고 말았다. 집세를 낼 수 없어 결국 집은 날아 가 버리고, 남의 집 지하 셋방으로 밀려나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그녀는 여러 가지의 스트레스 후유증으로 중풍을 맞고 말았다.

미용사로 근근이 일하던 그녀, 손을 쓸 수 없는 그녀는 결국 더는 미용사 일도 할 수 없게 되자, 그나마도 살아야 하는 삶의 의미였고 희망의 뿌리였던 사랑하는 아이들을 아빠에게 보내고 말았다. 지금은 남의 집 방 한 칸을 얻어 살아가고 있는 그녀, 한쪽 팔과 다리를 절며 기한이 다 된 영주권을 갱신하려고 왔을 때, “이왕이면 시민권을 신청하지 그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시민권을 따야 메디케이드라도 받을 수 있는데, 돈이 없어요.”라며 한숨짓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래도 조금만 더 보태면 시민권을 시청할 수 있는데”라며 안타까이 말하자, “그럼, 며칠 후에 돈을 마련해 오겠다.”며 들고 온 서류들을 주섬주섬 챙겨 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가 왔을 때 “돈이 없어 아무래도 시민권은 다음에 신청해야 할 것 같아요.”라며 긴 한숨을 짓는다. 할 수 없이 영주권갱신 신청서를 작성하던 중, 우리도 어려운 살림이지만, 그녀에게 시민권 신청비를 지급해 주기로 하였다. 그래야 그녀가 메디케이드라도 신청할 수 있고, 그러면 병원이라도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내게 와서 울면서 털어놓는 그녀의 사연을 들으며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외로웠다. 남편이야 다른 여자 품에 안겨버렸다지만, 자신의 힘으로 거둘 수 없는 사랑하는 아이들마저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그 마음, 그것은 살을 에는 아픔이었으리라, 좁디좁은 남의 집 방 한구석에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웠을까? 반 장애인이 되어버린 자신의 몸뚱이를 주물러가며 그녀는 그렇게 아프게 울었으리라, 아니, 떠나보낸 아이들이 그리워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그녀는 그렇게 울고 또 울었을 것이다.


친정도 모두 다 한국에 있다는 그녀, 누구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던 그녀가 가녀린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 있었다. “걱정하고, 슬퍼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려니 희망을 품고 살아요, 아이들은 아빠가 잘 키우겠지요”라는 말로는 위로가 될 수 없겠지만, 울고 있는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짐짝처럼 널려있는 게 남자이건만, 어찌하여 가정 있는 유부남에게 그 여자는 다가왔더란 말인가?

그렇다고 처자식 다 버리고 줄레줄레 그 여자 따라간 그 사람, 저 하나만 믿고 의지하며 살아온 조강지처에게 아픔과 슬픔을 더하여 장애까지 안겨준 그는 자신의 몸으로 난 아이를 보내 놓고 울고 있는 본처를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몇 달이 지나자 시민권 인터뷰 통지가 날아들었다. 그녀가 “저 많이 떨려요, 내일 꼭 시민권 인터뷰에 합격해야 하는데”라며 걱정을 한다. 정말 열심히 시민권 공부를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이 시험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겁니다. 내가 가서 통역 잘해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그녀의 어깨를 다독인다. 그녀가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그래 그렇게 웃어요, 용기를 갖고 희망을 품으세요.”라고 말하자 “저는 원장님만 믿을게요.”라고 한다.

시민권 합격해서 그녀가 어서 빨리 어둡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를 기원하며 밖을 내다보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저 멀리 사라져가는 그녀의 등 뒤에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이는 것은 아마도 희망이 가득 담긴 햇살 한 꾸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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