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박춘선

세월이 흐르고 20대에 들어서는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늘 소원이었고,  지금 나이가 들어서는 ‘이쁘다’는 말보다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욱 즐겁고 기쁜것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늙었다는 말을 들을까겁을 내고 있는것 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여자에게 ‘늙었다’는 말은 어떤 때는 절망감마저 안겨줄때도 있으니까. 30대초반의 젊은 총각이  40대 여자를 가리켜 ‘나이가 40이면 늙었지요’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때, ‘그럼나는?’이라고 외치며절망스러워했지만, 아직 장가도 안 간 총각이니 그럴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얼마전. 70을 바라보는 노인이 무슨 상담인가를 한다고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그는 자리에 걸터 앉더니, “혹시 혼자 사는 여자들도 있나요?”라며 “좋은 여자 있으면 중매 좀 하시지요.”라고 한다. “저는중매같은 것은 설 줄도 모르고 아는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홀로 사는  50대에서 70세사이의 여자와 남자들은 많이있던데요.”라고 했더니,  그가 기겁한 눈으로 “아이구, 여자가 나이 오십이면 늙었지요.”라고 하면서 “회장님도 신문에 나온 사진보다 훨씬 늙으셨네요.”라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그 순간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얼떨결에 한다는 대답이, “그래요?  제가 많이 늙어서 죄송합니다.”라며 웃음을 보였지만 속은 검게 그을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늙는데 뭐 보태준 것도 없는 그, 누구는 늙고 싶어서 늙었겠냐마는, 제 세월도 어찌 못 해 얼굴에 하나 가득 주름을 달고 있는 그가 지금 나보고 늙었다며 웃음을 띄우는 것이 어찌 얄미워보인다.

​내가 나이 들어 늙은 것은 사실이지만, ‘늙었다’는 그 표현을 듣는 이늙 은이 기분이 별로 상쾌하지 못하다.  그러자 그가 자신이 말 실수를 했다고 느꼈던지 “죄송합니다. 늙었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는 연세가 들어보인다는 뜻입니다.”라며 정정 사과를 했지만, 이미 그 표현이 가슴과 머리에 콰~악하고 박혀버려 뽑아 내기가 쉽지 않다. 

​내가 잘알고 있는 남자분이 있다. 그분 역시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오랜 세월 홀로 살고 있는 그분에게 어느날, “이제 자녀들도다 컸는데, 재혼하시지요.”라고 했더니,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어요, 여자 나이  40대는 너무 늙고, 30대 중반이나, 40대초반의 여자가 있으면 생각해 볼 만도 한데”라며 입맛을 쩍쩍 다시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사람이 맛이 갔나?”라며기가 막히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는데, 그는한술 더 떠서, “키는 적어도 165정도는 되어야 하지않겠어요? 그리고 유명대학은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소한 대학공부는 마친사람이면 좋겠고, 얼굴도 미인은 아니라도 좀 예뻐야 할텐데, 어디 좋은 여자 있으면 하나 소개하세요.”라고 한다.

​나는 그사람 중매서 줄려다 내가 미리 빰 맞을까 두려워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나이든 남자도 젊은여자. 젊은 남자도 젊은여자, 여자가 나이 드니 수난이 많다.

​유명한 코미디언이 주일씨가 ‘못생겨서죄송합니다.’라는 노래를 불러 히트를 쳤다. 못생긴 것이야 요즘 성형으로 뜯어고치면 되겠지만, 반세기 세월을 증명하는 늙음을 어쩔것인가, 나는 늙음이 하나도 죄송할것 없건만, 웬지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그가 돌아간 후,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가늙었나? 늙기는 늙었는데, 늙은 것을 어쩌란말인가, 어쩔것이냐구우’라며 이마에 붙어있는 주름을 머리 위로 밀어 올려붙여본다.

​그 탱탱하던 청춘, 아름답던 젊은 날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깔깔대며 친구들과 어울려 거리를 쏘다니던 그 시절은 어디로 숨어버린것일까? 젊은 사람에게 늙었다는 말을 들었더라면 덜 억울할수도 있으련만, 70대 노인에게 ‘늙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오늘따라 내 인생이 종착역에 다다른 듯허무하다. 기왕이면 늙었다는 말보다는 ‘그래도 나이 보다 훨씬 젊어보입니다.’라고 했더라면, 그것이 행여 거짖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마음이 퀭하지는 않았을 것을,  아무튼 대중을 만나야 하는 제가 늙어서 죄송합니다. 늙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